티스토리 뷰

HP가 위기가 찾아온 시점에 기업 분위기는 성공에 대한 안주와 초기 HP 창업자가 주창한 HP Way의 왜곡으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이쯤 영입 된 칼리 피오리나는 HP가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면서 위기의 시발점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칼리피오리나 내부 기득권을 깨부수다


HP에는 130개의 독립적인 제품 사업부가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각 사업부 마다의 재무 목표 달성에만 혈안이 되 있었다. 마치 소니의 컴퍼니제도 처럼 사업부간 협업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실적 향상에만 몫을 맸다는 이야기다. 


칼리 피오리나는 CEO 취임후 “HP의 좋은 점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바꾸자”며 개혁을 선언했고, 임원 회의 장소를 본부 건물에서 연구 동으로 옮기는 노력도 보였다. HP의 창업자가 주창한 장인정신, 벤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에서였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HP 내부에서는 자신들의 철밥통이 깨질 것을 우려해, 각 사업부 별로 강한 내부 반발이 있었다. 


특히, HP는 대표적인 미국식 경영 기법을 내세우는 기업이었음에도, 일본식 경영 기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인본주의를 밑에 깔고 있었다. 때문에, 직원가 기업간 유대가 컸는데, 이런 스타일이 HP의 생명력을 갉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기간 굳어지면서 경쟁이 사라지고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가 계속되니, 각 사업부 별로 관료화가 됬던 것이다. 칼리 피오리나의 눈에는 이것이 큰 문제였다고 보인 것이다. 



역사상 가장 최악 또는 최상의 M&A로 기록되는 컴팩합병

이런 내부적 이전 투구 상황에서, 철밥통을 깨뜨리기 어렵다는 판단을 칼리피오리나는 내렸다. 그리고 HP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경쟁 기업 특히 IBM은 당시부터 이미 PC 비중을 줄이고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방향으로 기업을 움직이고 있었다. HP는 갈림길에 서 있었고, 하드웨어로 가느냐 아니면 IBM의 벤치마킹하며 IBM을 따를 것인가의 기로에 서있다. 


당시 상황을 보면 불확실성이 강했다. PC 시장의 공고함은 흐트러지지 않고, .COM 버블로 시작 된 IT 열풍은 PC 시장을 촉진시키고 있었다. 


문제는, 달콤하며 당시 기준으로 잘 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PC 시장의 가치가 더 크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IBM이나 SUN이 걸어간 소프트웨어에 길은 필요성은 인지되지만, 당장 HP가 PC 부분보다 강화해야 할 하등의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소프트웨어는 불확실 하지만, PC는 몇년간 성장 할 것이 예상되니 다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칼리 피오리나는 결정한다 컴팩을 인수하기로 말이다. 


그리고 역사에 잘못끼워진 첫 단추가 되는 HP와 컴팩의 합병이 실현됬다.


2001년 9월, 세계 3위의 PC업체인 HP가 세계 2위의 PC업체인 컴팩과 주식교환방식(1:0.63)으로 합병 했다. 당시 20년 만에 기술주가 사상 최악의 추락을 맛보고 있던 시절, 놀라운 사건을 칼리 피오리나는 실현했다. 



컴팩 인수로 HP Way를 붕괴시키다


결과야 어찌됐던 이 놀라운 인수는 HP를 세계 1위의 기업으로 만들었고 HP Way가 약화되기 시작하면서 불거진 문제들을 해결하는 도구로서 이 논라운 합병이 이용되기 시작했다.


양사 합병으로 전세계 178개국에 14만 5,000명의 인원이 결합하는 PC계의 공룡이 됬다. 합병후HP 역사상 가장 많았던 1만 5,000명의 엄청난 직원 구조조정이 시작 됬고, 중복 생산 라인을 재편에도 방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갔다. 


HP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이나 사업부 개편을 진행하려고 했다면, 내부 반발로 무산될 수 있었지만, 이런 거대한 합병으로 외부적인 변화 요구가 거세지면서 이런 힘을 바탕으로 칼리 피오리나는 HP 내부에 메스를 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PC 경기가 좋지 않은 시기였음에도, 과도한 합병으로 HP는 수익성 개선을 위해 비 인간적 경영을 시작 할 수 밖에 없었고, HP Way 붕괴의 서막을 알리게된다. 


이 때문에 대주주였던 HP의 창업자 가문이 이 합병에 제동을 걸었고, 창업주 집안과 전문 경영인간 위임장 대결 및 법정 공방까지 진행되기도 했다.


칼리 피오리나가 승리했지만, 장기 고용으로 뒷받침 되던 기업문화 해제와 ‘HP Way’ 파괴는 칼리 피오리나의 커리어에 최대의 실패로 기록되는 악수로 기록되게 됬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댓글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narsass.tistory.com/ BlogIcon 나르사스 저는 HP와 컴팩중 컴팩의 노트북 제품들이 제 취향에 더 맞아서 합병된 후 두 회사의 어중간한 부분만 합쳐져서 나온 노트북들이 좀 그렇더라구요. 컴팩의 감성 HP의 신뢰성이 다 사라졌다고나 할까...(그래서 한때 고생했죠) 2013.03.29 17:40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ystemplug.com BlogIcon 어설프군 YB 어설프군 YB 화학적 결합이 아닌 물리적 결합으로 시장 파이를 빼았는 싸움으로 이용되서 그런것 같습니다. 저도 이후 제품들이 볼품 없다는 부분에 동의합니다. 2013.12.20 10:48 신고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