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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게이츠와 폴앨런을 일으켜 세운, 세계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 ALTAIR 8800

Microsoft사가 있는 워싱턴주의 레드먼스시에서 1998년 50대의 뉴요커지 칼럼니스트가 MS 캠퍼스에서 빌게이츠 회장을 만나 대뜸 창업 과정에 대해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당신에게 가장 두려운 장애물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패하는 것? 이라거나, 빚을 지는 것?.. 등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많이 알려진 사실들에 대해서 두렵다는 생각을 먼저 말 했을텐데.. 그는 독특하게도 가장 두려운 것을 이렇게 대답합니다.

"누군가 차고에서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개발하고 있지 않을까 두렵군요" 라는 대답으로 창업에 있어서의 어려움과 두려움을 이야기 합니다.

좀 더 풀어서 생각해보면 이미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올라섰지만, 새롭게 더 위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준비되지 않은 가치를 실현시키고자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벤처인들에 대한 두려움을 애둘러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 2부에 이어서 빌게이츠가 Microsoft사를 창업하는 과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을 다시 마나게 한 잡지, 파퓰러 일렉트로닉스..
"생애 최고의 타짜, 빌게이츠의 세상 지배법 1부"에서 빌게이츠가 부모가 원하던 법조인이 아닌 IT 업계의 대부로 발전하게 된 계기를 말씀 드렸습니다.

이들이 최초로 설립한 회사 TRAF-O-DATA 창업도 나름 큰 성공은 아니지만 빌게이츠 인생에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는 인생의 페이지를 기록하게 되었죠? 이 시기에 이미 그는 어느 대학이든 4년 동안 학비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 만큼의 많은 비용을 벌게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설득이나 명령이 아닌 부탁이라고 표현하더군요)에 의해 하버드 대학교 법학과에 입학 합니다. 이를 계기로 TRAF-O-DATA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 같습니다. (아니면 누군가에게 팔았거나 말이죠)

남들은 하버드에 피나는 노력을 해도 들어가지 못해 안 달인데, 이 사람은 저주 받은(저 같은 일반인 입장에선 저주고, 저 사람 입장에선 축복이겠죠 ㅠㅠ)재능과 뛰어난 두뇌로 하버드도 생각보다 손쉽게 입학합니다.

그런데 유복한 집안에 남들 가지지 못한 것 다 가졌고, 고등학교땐 이미 이런 저런 사회 경험도 쌓고 이 과정에서 꽤 큰 돈도 만져 봤죠? 그러다 보니 학교가 재미 있었겠습니까?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학교 생활의 유일한 낙이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포커게임 즐기기였다는 군요.

엄청난 승부욕의 화신이었고 머리도 좋았던 빌 게이츠라 포커 게임의 승률도 매우 높았다고 하네요. 거의 모든 게임을 이기다 시패해서 나중에 이 돈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 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말씀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많은 분드이 포커 같은 카드 게임을 단순한 놀이라거나 운에 기대는 게임으로 알고 있지만 카드는 매우 수학적이고 계산적인 기초에 만들어진 과학적인 게임입니다.

빌 게이츠는 모든 의사 판단을 할 때 통계와 데이터에 기반해서 판단하고 의사 결정을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불확실한 것보다 예측 가능한 걸 좋아했다는 말이죠. 그래서 카드 게임에도 소질이 있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암튼 이때 포커 게임에서 만난 친구가 현 마이크로소프트의 CEO인 스티브 발머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다시 이야기를 해보면 그들의 창업에 큰 결심을 짖게 만든 것이 바로 파퓰러 일렉트로닉스라는 1975년 발행 된 잡지 때문인데, 동업자로 알려진 폴 앨런이 길을 가다가 우연히 접한 세계 최초의 소형 컴퓨터가 탄생했다는 파퓰러 일렉트로닉스 기사를 보고 뒤돌아 볼 여유도 없이 허니웰 사직후 바로 하버드의 빌 게이츠를 만나러 가게 되면서 창업을 결정하게 됩니다.

폴 앨런은 잡지를 보고 앞으로 미래의 컴퓨팅 시대가 올 것을 예상했던 거죠. 이전 글에서도 말씀 드렸듯 폴 앨런은 이런 천재적인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었고 빌게이츠 역시 어린 시절부터 모든 가장에 컴퓨터가 한대씩 있는 상상을 했었기에 둘은 잡지를 통해 정보를 접했다기 보다 미래를 보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컴퓨터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 당연히 다양한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빌 게이츠 역시 이 시대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가슴에 생긴거죠.


여관 창업과 법조인 아버지 사이의 고민
가슴이 뛰기 시작한 빌 게이츠는 그렇잖아도 흥미 없던 학교였는데 바로 뛰쳐나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기대하는 법존인에 대한 바람을 쉽게 저버리지 못했던게 문제였습니다.

바로 결정못하고 시간이 흐르고 있을때, 그의 눈앞에 세계 최초의 소형 컴퓨터 알테어 8800이 등장하게됩니다. 그것이 기회라는 것을 직감하게 되죠. 빌게이츠는 그렇잖아도 누군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먼저 치고 나갈 것 같은 불안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더이상 참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쉽지 않은 기회를 누군가가 차지하는 것을 더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게 된 것이죠. (당시 빌 게이츠 심정이 이랬을 것 같습니다.) 결국 누군가가 자신의 기회를 채 갈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하자 그의 결단력도 예리해져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컴퓨터에 자신의 인생을 걸어보기로 작정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부모님과의 마찰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이런 내용은 잘 알려지지 않아서 제가 예상해 본다면, 잠시 냉전기간을 갖고 있다가 빌 게이츠가 아버지를 설득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 아버지가 꿈을 접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싶네요.)


Microsoft 창업의 계기가 된 MITS사와 Basic 프로그램
MITS사가 만든 Altair 8800은 당시 엄청나게 인기가 있었는데 창업자 에드 로버츠는 시애틀의 한 회사 (당근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겠죠?)에서 BASIC 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구매할 의사가 없는지를 묻는 편지를 받게 됩니다. 

당시 BASIC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던 에드 로버츠는 회사에 전화도 해보고, 주소에 찾아도 가보지만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지만, 그 어떤 제안보다 큰 흥미가 생깁니다.

이제 좀 의미를 알게 되시겠죠? 그 편지는 보스턴에 있었던 빌 게이츠와 폴 알렌에 보낸 것입니다. 이때 까지만해도 BASIC이 개발전 이었고 회사를 설립한 상태도 아니었지만 MITS의 에드 로버츠가 BASIC과 같은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일지 알아보기 위해 빌 게이츠가 머리를 쓴 것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상대방 의중도 모르고 먼저 개발부터 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빌 게이츠가 고도의 전술을 구사한 것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경험은 역시 그가 과거 여러 차례 사업을 통해 사업자들이 학생의 말보다는 기업의 공신력 있는 제안을 더 신뢰한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학생 신분인 자신의 이름을 이용하면 그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는 생각에 듣도 보도 못한 머리속에만 만들어져 있는 프로그램에 이름을 입혀 관심을 유도하고 기업이라고 속인 편지를 에드 로버츠에게 보내 그 편지를 읽어보게 만든거죠?

(이런 상황을 유추해보면 창업 결정후 바로 학교를 그만둔 것은 아니고 나중에 공급계약 체결후 그만둔 것이라 판단됩니다)

이 하나의 산건만 봐도 빌 게이츠가 얼마나 뛰어난 사업가인지 알 수 있고, 빌 게이츠의 천잭인 비즈니스 능력과 마케팅 능력을 여기서 다시 확인 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런 해프닝을 거쳐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은 에드 로버츠와 접촉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나중에 알려졌지만 이때 이미 빌게이츠 이외에도 유명한 개발자나 개발사가 그들에게 프로그램 개발을 의뢰해 와서 일반적인 방법으론 승산이 없었던 것을 빌게이츠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에드 로버츠가 반응을 보이자 빌 게이츠는 폴 알렌과 함께 BASIC 인터프리터를 PDP-10 미니컴퓨터의 8080 시뮬레이터를 이용해서 Basic을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에드 로버츠도 어린 학생들의 열정과 당돌함에 기가차기도 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기회를 주게 되는데 그들에게 8주 개발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들이 말한 프로그램을 8주안에 만들어서 보여달라고 한거죠.

이것만으로도 자신들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생각한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은 하버드 대학 컴퓨터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약속한 8주만에 BASIC을 하버드 대학에서 완성을 하고 뉴멕시코 앨버커리로 날아갔습니다. 

완성 된 프로그램을 종이 테이프에 펀칭을 해서 MITS가 있는 뉴멕시코주의 앨버커키까지 날아간 폴 알렌은 Altair 8800에서 실행을 시켰지만, 화면에 일단 "Altair Basic" 이라는 표시를 남 남기고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한마디로 완벽하게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에드 로버츠는 그런 그들의 노력을 좋게 봤는지 공식 계약을 체결하죠. 이 과정에서 보면 한국에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면 이런 기회를 젊은 친구들이 얻을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럼 바로 고개 숙이게 되죠?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인데.. 실패보다 성공에 무게를 두는 한국의 현실 때문에 말이죠.

첫번째 작업이 실패했지만, 그렇게 계약 한후 지속적인 작업을 통해 프로그램을 완성하게 됩니다. (다만, 의문인 것은 조사한 자료가 중구 난방이라 첫번째 실패후 계약후 성공했다는 이야기와 완벽하게 성공했다는 이야기 2가지가 있는데 어느정도 동작한 것을 성공으로 인식하고 있는 정도로 예상하면 대부분 글들의 맥락이 맞아 들어가니 그렇게 인정하시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MITS사가 있는 뉴멕시코 작은 여관방에서 Microsoft 창업
공급 계약이 체결되자 빌게이츠와 폴 앨런은 MITS사가 있는 뉴멕시코의 작은 여관에서 Microsoft를 창업합니다.

현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란 용어가 흔하게 사용되었지만 Microsoft 창업 당시만 해도 하드웨어는 알아도 스프트웨어가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는지 사람들이 알지 못했습니다. 소프트라고 하면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생각하던 시절이었던거죠.

그래서 빌게이츠와 폴 앨런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창업하자 사람들은 작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로 알 정도였다고 합니다.

창업 과정에서 빌게이츠의 생각을 역추적해 보면 상당히 비즈니스적으로 완벽한 모습과 미래에 대한 선견 지명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중에 애플의 것을 많이 모방했다고 욕을 먹지만 어쩄든 폴앨런의 무한한 상상력에 빌 게이츠의 철두 철미한 계산적 사고가 더해져 미래 예측과 결정을 통해 Microsoft의 기틀을 마련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비즈니스 능력은 MITS 계약에서 알 수 있죠. 당시 대형 컴퓨터 판매만 생각하던 시절이라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판매하는 수익모델은 모두 생각하지 못했는데 빌게이츠와 폴앨런은 이런 비즈니스 기초를 여기에서 만들게 된 거죠.




이쯤해서 빌게이츠와 폴앨런은 레이크 사이드 학교에서 같이 컴퓨터를 연구했던 친구들을 Microsoft에 합류 시킵니다. 조금씩 회사의 체계를 잡아 간 거죠. 그리고 아버지의 도움도 받습니다. 그래도 믿을 구석이 아버지 밖에 없었을 테니깐요.


Microsoft와 빌게이츠-폴앨런, 더 큰 성장을 위해 MITS를 벗어나다
Microsoft가 개발한 BASIC은 이용하기도 쉽고,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에 컴퓨터 매니아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고 합니다. 또한 당시만 해도 전문 소프트웨어 회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실력을 신뢰한 여러 하드웨어 회사들이 많은 일을 의뢰하기 시작했습니다. 

창업하자마자 1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고, 그 다음해에도 성장가도를 달렸 20만달러를 돌파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쯤 되자 MITS가 걸림돌이 되기 시작합니다.  소프트웨어를 직접 판매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에 딸려나가면서 로열티를 받는 구조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MITS 라는 회사의 하드웨어 생산능력과 판매량에 따라 회사의 성장성이 제한 받는 상황이 된거죠.

알겠지만 빌 게이츠가 이것을 참아 넘기겠습니까? 더구나 독점적 계약 구조라 다른 회사의 하드웨어에는 BASIC을 탑재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기에 MITS 에 속박 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라 결국, 빌 게이츠는 1년 뒤인 1977년 결국 MITS 와의 계약을 파기합니다.

이 과정에서 빌 게이츠가 빌 게이츠 인생에서 최초로 배신의 아이콘이 되죠?

처음에 MITS는 이제 20대 초반인 빌게이츠가 소송을 걸자 노발대발하면서 화를 냈지만  MITS는 어린 빌게이츠를 얕잡아 본 것이 큰 화근이 됩니다. 법학과를 다니고 아버지가 시애틀에서 유명한 법조인 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한거죠.

결국 법정으로간 분쟁은 빌게이츠의 완승으로 결론이 나는데 여기에도 빌게이츠의 뛰어난 능력이 빛을 발합니다. 처음 계약서를 쓸 때만해도 계약 파기에 대한 내용은 없었지만 계약서를 면밀히 살펴보던 빌게이츠는 계약서 마지막에 MITS가 베이직 판매를 위한 마케팅에 최선을 다한다는 항목을 추가했던거죠.

처음부터 계약파기를 언급하면 당연히 계약 진행이 어려울테니 그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정도이지만 계약서상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한 겁니다.(여기서 계약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죠) MITS는 아무렇지 않게 빌게이츠의 의견을 들어주었는데 이때 넣은 계약서 항목이 마이크로소프트를 MITS의 그늘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중요한 키가 된 것입니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들이 개발한 BASIC 을 다른 회사에도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하면서 때마침 불어닥친 PC 바람과 함께 회사가 급성장을 하게 되는데 소송 제기 당시 매출 100만불 이었다면 이후 400만불 매출을 기록하며 뉴멕시코를 탈출하게 되었고, 세계의 유명한 컴퓨터 제조사들도 이 시기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미국 시장을 위해 미국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1978년 11월에는 일본의 하드웨어 업체들에게 BASIC 을 공급하기 위해 ASCII Microsoft 라는 법인을 일본에 설립하게 되는데, 이 회사는 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일본지사가 되며 일본을 중심으로 결성하게 되는 MSX 컴퓨터 연합을 이끄는 중심이 됩니다. 

전 세계의 PC 하드웨어 업체들을 고객으로 맞게 된 빌 게이츠는 뉴멕시코를 떠나 자신의 고향인 워싱턴주 시애틀 인근의 벨뷰(Bellevue)로 회사를 옮기는데, 이 때가 1979년 1월 1일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애틀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1979년 동부에 있었던 에릭 슈미트는 캘리포니아로 넘어오게 되고, 1977년 애플 II를 발표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1979년 전 세계를 애플 II 로 호령하면서 떵떵거리기 시작합니다. 

참고글: 여관에서 시작된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 비화
참고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의 IT 삼국지 (4)


세계를 놀라게 한 알테어 8800은 어떤 것인가?
세 게 최초의 PC로 일컬어지는 Altair 8800은 인텔 8008 기반 Mark-8과 함께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만, 전체적인 큰 그림으로 생각 할때 최초로 봐도 크게 무방 할 것 같습니다, (PC의 역시는 차후 기회가 되면 소개해 드리도록 하고 오늘은 빌게이츠에 집중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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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인이 간과하는 비즈니스와 마케팅의 갈림사이
많은 분들이 빌게이츠를 기술 없는 비즈니스맨으로 만 매도합니다. 그가 실제 기술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진실을 알긴 어렵죠? 그가 말하기 전까진 말입니다.

또, 그가 만든 MS 신화가 단순하게 비즈니스 능력과 시장 과점을 통한 압박으로만 얻어진 것이라고 평가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전 선을 긋고 싶습니다.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잘 못 이전에 그 사람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떄문입니다. 상품의 가치와 팔릴 제품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하고 모방이든 복제든 그것이 시장에서 알아 줄 수 있는 제품인지 판단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다만, 이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빌 게이츠가 모방 한 것도 자신 것이라고 주장하고, 독선적 행태를 보였던 것은 지적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모방도 언제든 재 창조의 산물이 될 수 있고 현존하는 인류의 많은 유산이 무에서 유로 탄생 된 것이 아닌 유에서 또 다른 유로 탄생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비즈니스로 연결 시키는 능력이 없다면 그건 무의미한 가치일 뿐이겠죠. 그것을 빌 게이츠가 성공 시켰기에 이 부분에 대해선 인정이 필요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글 중간에 나타나는 계약서 문제, 한국의 많은 IT 기업이 갑/을 관계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괭장히 불리하게 계약서를 쓰고 이것이 하나의 노예 계약서가되 많은 어려움을 당하는 원인이 되는데..

정말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어떻게든 빌 게이츠처럼 머리를 써서라도 이 계약이 회사에 심각한 문제를 끼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서로 손해를 끼치지 않는 수준에서 지혜롭게 도망 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이번글 마무리 하겠습니다.


[관련글]
1부 - 어린 시절 빌게이츠는 반항과 승부욕의 화신이었다.
2부 - 빌게이츠의 성공뒤엔 평생지기 폴앨런이 있었다
3부 - 빌게이츠 여관에서 MS 창업하다
4부 - 카피캣의 오명 남긴 MS-DOS와 Q-Basic의 진실
5부 - 빌게이츠와 스티브잡스, 서로 다른 모방과 창조론
6부 - OS의 역사적 교훈, 주도권 잃은 IBM과 MS의 동맹
7부 - MS와 빌게이츠에 날개 달아준 애플CEO 존스컬리
8부 - IT계의 다스베이더가 된 빌게이츠식 독과점 경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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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eozin.tistory.com BlogIcon 오리 잘읽고 갑니다. 좋은 글이네요 ^^ 2011.09.26 15:07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cfono1.tistory.com BlogIcon cfono1 최선을 다하지만 대안을 위한 시나리오는 존재하는 법이죠^^ 빌 게이츠는 적절하게 준비했군요! ㅋㅋㅋ 2011.09.27 16:39 신고
  • 프로필사진 쏠쏠 빌게이츠 무서운 사람이었군요;

    세계최고의 점유율을 자랑하는 OS와
    세계 1위의 부자라는 타이틀이 단순히 시대의 흐름을 타고 우연에 얻어진게 아닌것 같군요;
    2011.10.16 18:46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mushroom9058.tistory.com BlogIcon 조영지 배신의 아이콘이라고 까지는 하긴 어려울 것 같군요.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 내린 선택이니 만큼 .... 과연 계약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럼 재밌게 읽고 갑니다.

    2012.07.24 19:23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ystemplug.com BlogIcon 어설프군 YB 사실, 이 부분은 고민을 많이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결과론적으로 보면 빌게이츠 입장이 이해되지만,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경영자로서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물론 상황이 그러하긴 했지만요) 결정한 것이 이런 결과를 만든다는 점에서 계약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해야 하는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2.07.24 22:3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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