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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게이츠의 두뇌라고 불리웠던 폴앨런은 왜? 역사에서 사라져야만 했나?

게이츠와 잡스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여러가지 있는데 그중에서도 스스로 중노동에 가깝게 일하는 리더였고 또한, 부하 직원들에게도 그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무서운 경영자였습니다.

지금은 빌게이츠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니 그에게 좀 더 집중해 보면 위에서 말한 실천하는 독한 리더의 전형적인 모습을 Microsoft사 초창기 알테어용 프로그램 개발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젊은 게이츠는 MS 초창기 알테어용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폴앨런과 함께 철야로 이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일하다 갑자기 게이츠가 엎드려 잠을 자서 그러려니 했는데, 잠잔지 불과 20여분 만에 게이츠는 다시 일어나 언제 그랬냐는 듯 프로그램을 개발하더라는 것입니다.

참고사항: 두 사람 만들었다는 알테어는 1970년대 중반 알테어 8800에서 동작하는 앨테어 베이직(Altair Basic) 인터프리터를 말하며 알테어(Altair)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로 현재 알려져 있습니다.


이 모습에 깜짝 놀란 폴 앨런이었는데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는 군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일하다 지쳐 자는 비참한 노동자로 생각 됐겠지만,  게이츠 본인에겐 자는 시간 마저도 아까워 이렇게 쪽잠을 자고서라도 일을 완성하려는 열정이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힘든 환경이었지만 스트레스만 받지 않았고 일에 열정을 보이며 즐기는 모습이었고, 한편으론 다른 이에게 추월당하지 않을까 하는 초조함도 갖이 있어서 그런 불안감을 잠재워 노동의 에너지로 삼으려 했다는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참고서적: '평전 스티브 잡스 vs 빌 게이츠 - 세상을 바꾸는 두 CEO의 도전과 성공' 중에서...


사업에 천재적이었던 게이츠는 이전글에서도 말씀 드렸듯 승부욕과 집요한 성격의 젊은 엘리트였던 것이지요.


빌 게이츠의 운명을 바꾼 첫번째 인연 정신과 전문의 (또는, 심리 치료사)
게이츠는 젊은 시절의 동반자 폴앨런을 미국 시애틀 유명 사립학교인 레이크사이드 스쿨 10학년때 만납니다. 당시 게이츠는 8학년이었고 11살쯤 되던 시기였습니다.

이 레이크사이드 스쿨은 사립학교 이지만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합쳐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에서도 이런 유형에 학교가 있지만 흔하지 않은 케이스였는데요.

명문 학교라 그랬는지 동부의 알아주는 대학보다 학비가 비쌌다고 합니다. 물론 시설도 좋았지만요. 그러나 학교 운영과 교육 방식이 엄격해서 인지 자유 분방한 게이츠에겐 잘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전 글에도 설명 드렸듯 당시의 게이츠는 사춘기 시절이라 반항기가 극에 달해 있어서 부모에 대들기도 하며, 아동 심리 치료를 받았는데요. 좋은 심리 치료사를 만나서 안정을 얻게 되고 학업에 정진하게 됩니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치료사(정신과 전문의 였던듯..)의 조언에 따라 엄청난 양의 책을 읽는 독서가로 변합니다. (이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져 그의 집에는 도서관이 따로 있을 정도죠)

그렇게 학교에서 안정을 찾아가던중 이전 글에서도 말씀 드렸던 컴퓨터 단말기로 인해 폴앨런과 만남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빌 게이츠 인연에서 악연으로 끝나는 동업자 폴앨런을 만나다
레이크사이드 스쿨의 부모회에서 진행한 바자회 수익금으로 컴퓨터 단말기 구매하는데 GE의 ASR-33 이었습니다.  당시엔 컴퓨터 드물었고, 시애틀에서는 레이크사이드가 최초로 컴퓨터를 쓸 수 있는 환경을 구축된 것이기에 많은 학생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 때에는  PC 개념이 아니라 메인 프레임 개념으로 커다란 컴퓨터가 외부에 있고, 이 컴퓨터에 연결이 가능한 터미널을 학습 공간에 들여 높아 컴퓨터를 이용 할 수 있게 했다고 하네요.

이에 대해 좀 더 설명드리면 메인 프레임과 연결 터미널간의 통신은 전화선이용했는데 당시엔 전화선을 이용하다 보니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추가로 내야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시간당 40달러나 되는 요금이라 부모회에서 만든 바자회 수익으론 감당하기 힘들었겠죠.




폴앨런에 따르면 당시 폴앨런을 포함한 3명의 친구와 함께 이 단말기에 살았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폴앨런은 Microsoft를 창업했다고 하죠. 문제는 이들이 사용한 컴퓨터가 사용량을 초과해 더이상 사용 할 수 없게되었고 결국 학교에서 컴퓨터 사용을 금지했는데 천재성이 있던 사람들이라 컴퓨터에 아무도 모르게 있던 버그를 이용해 계속 컴퓨터를 사용하게 됩니다.

결국, 이것도 들켜서 못하게 됬지만요.


Microsoft 창업의 기초가 된 TRAF-O-DATA 창업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Microsoft 창업 이전에 빌게이츠는 폴 앨런과 TRAF-O-DATA를 먼저 창업하게 되는데, 이것이 계기가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조직한 레이크사이드 프로그래밍 그룹에서 출발합니다.

이들은 메인프레임 컴퓨터 임대와 판매를 하는 인근 회사에 찾아가서 프로그래밍과 프로그램에서 버그를 찾는 일을 하는 대신 컴퓨터를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는데, 야간에 쓸 수 있는 허락을 얻어내어 컴퓨터를 마음대로 쓰게 됩니다.

그런데, 이 회사도 망하게 되자, 이번에는 폴 알렌의 아버지의 주선으로 시애틀의 명문 대학인 워싱턴 주립대학교(UW,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워낙 뛰어난 실력을 가져 고등학생임에도 그들에게 일거리를 주는 곳들이 생겨납니다. 

당시 인포메이션 서비스라는 회사가 있었는데 그 회사가 의뢰한 급여 관리 프로그램은 빌 게이츠가 프로젝트 관리를 하면서 3개월간의 작업을 통해 1만 달러라는 거액의 돈을 벌게됩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창업을 결심하게 되고 이때 그의 아버지가 도와줘 "TRAF-O-DATA"를 창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회사는 외부에서 용역을 받아 돈을 벌고 (지금 말하면 SI 업무 였던듯 합니다.) 학교에서도 다양한 관리 프로그램의 제작하며 경험을 쌓아가죠. 어떻게 보면 이것이 Microsoft 창업의 기초가 되는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만큼 빌게이츠의 고등학교 생활은 일반인 관점에서 재미없던 시기 였던 것이죠.

"TRAF-O-DATA" 는 최신 마이크로프로세서 였던 인텔의 8008(후에 8080 을 거쳐, 8088 이 IBM PC에 채택) CPU를 이용해서 교통상황을 점검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빌 게이츠는 이를 바탕으로 1973년 초에는 미국 하원의회를 위해 일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빌 게이츠가 고등하교를 떠나 1973년 하버드 대학에 입학을 하면서 그의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합니다.

참고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의 IT 삼국지 (2)


하버드에 진학한 빌 게이츠, 폴 앨런을 잊지 않아..
전체적인 상황을 놓고 보면 빌 게이츠는 지독스러운 배신자 입니다. 자기보다 나이 많았던 폴앨런을 그 힘든시기 의지하며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동료를 몰아낼 작정을 하죠.

결국 폴앨런은 MS를 나갔지만, 빌 게이츠 역시 나중에 스티브 발머에 의해 불명예스런 은퇴를 맞이하게 됩니다. 뭐 어쨌든 나중에 이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빌 게이츠는 단순하게 승부욕이 강하고 성실에 기반해 노력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부모에게 얻은 천재적 두뇌도 함께 소유하고 있었죠. 그래서 하버드도 쉽게 들어가게 됩니다.

반면 폴앨런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워싱턴 주립대학으로 진학을 했다가, 보스톤의 허니웰(Honeywell)에서 일 하다 회사를 그만두는데 허니웰 사직의 근본적 이유는 하버드에 간 빌 게이츠 때문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대학생이 되어서도 폴 알렌과 빌 게이츠는 연결되고 있었고, 폴앨런의 설득으로 빌 게이츠는 하버드 대학을 그만두고 같이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게 됩니다.

물론 이 시점에 스티브 발머가 등장하죠? 암튼.. 앞으로 이이야기는 계속 해드릴테니 여기에서 이사람을 만난다 정도만 알면 될 듯해요.


이 시점에 폴앨런이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공동 창업자 였던 빌게이츠와 폴앨런 그리고 창업자급에 속하는 스티브 발머의 역학 관계를 보면, 빌 게이츠는 기술을 알며 비즈니스를 아는 경영자였고, 스티브 발머는 조직 운영과 마케팅을 알며 정치에 능한 술사 였습니다.

끝으로 폴 앨런은 창의적 인재로 보통은 빌게이츠의 기술적 맨토로 알려져 있고, 다양한 기술에 대해 알고 이를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있었지만, 커뮤니케이션과 사람을 다룰줄 모르는 전형적 엔지니어 스타일 이었습니다.

빌게이츠도 물론 뛰어나지만 앨런은 좀 더 창의성을 갖춘 인물로 이런 안목에 대해서 만큼은 스티브잡스와 약간 닮아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앨런의 아이디어는 늘 시대를 앞서갔는데요.

인텔이 8008보다 업그레이드 된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8080을 내놨을 때 이를 기반으로 한 컴퓨터 개발에 대한 구상을 내놓았던 인물입니다. 수백개의 칩을 연결해 현재의 미니 컴퓨터 보다 더 싸면서도 강력한 컴퓨터를 만들면 IBM을 능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했던 인물이죠.

그가 MS에서 싱크탱크 역할을 했다는 내용은 알려진 것에 비해 자료가 부족해 소개하긴 힘들지만 그의 다양하고 독특한 이야기를 들으면 대단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000년 폴 알렌은 자신의 영웅인 지미 핸드릭스를 위해서 락앤롤 박물관을 지어서 기부고, 2004년엔 공상 과학소설을 위한 박물관과 명예의 전당을 오픈합니다. 그리고 그는 기타를 연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연락만 하면 24시간 안에 함께 연주할 수 있는 뮤지션도 데리고 있습니다.

또한, 폴 알렌은 2차대전 전투기를 수집하고 있으며 좋아하는 극장이 철거된다고 하자 아예 극장을 샀는 것은 물론, 극장을 사서는 사운드와 프로젝션 시스템을 보강하는 등 새로 수리하는 열정을 보이는 인물입니다.

이와 더블어 자선사업도 진행하고 그의 이름을 딴 알렌인스티튜트라는 연구 기관을 설립해 뇌과학 연구에 대한 결과를 무료로 공개하는 뇌과학 투자자 였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가 너무 일찍 혈액암에 걸렸고, 이과정에서 빌게이츠와 스티브 발머에 의한 자신의 지분율 조정을 논의하면서 급격히 빌게이츠와 사이가 벌어지고 끝내 결별을 한 것입니다.


폴앨런과 빌게이츠가 엇나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1974년 MITS사의 에드 로버츠가 발명한 최초의 PC 알테어8800을 돌릴 베이식을 개발한 두 사람은 MS를 공동 창업했죠? 회사 이름으로 '앨런 앤드 게이츠'를 고려했는데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소프트웨어를 합한 마이크로소프트로 정했다고 합니다.

창업 과정에서 앨런은 50 대 50의 수익 배분을 생각했는데 게이츠는 60 대 40으로 자신이 더 많이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해 충격을 받기도 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수입 분배 문제는 두 사람 사이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갈등 요인으로 남습니다. 1977년 사무실을 확장 이전했을 때 게이츠는 64 대 36으로 수정 제의를 다시 합니다. 앨런은 "(게이츠는)어떤 합의든 서명과 봉인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재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믿었다"며 "그 범위에서 늘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최대치까지 밀어붙였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자신의 일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고 그것이 납득가지 않으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 이었지요. 그러나 앨런도 아이디어 뱅크로 서 가치가 있다 생각하고 있어서 그를 쉽게 설득하긴 어려웠습니다.

앨런의 아이디어 중에 지금의 PC산업의 개념을 당시에 제시하기도 합니다.

"PC가 곧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기기가 될 것", "요즘의 인터넷처럼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긴밀히 연결되는 컴퓨터 중심 사회가 될 것" 제시한 것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1979년 MS의 베이식 해석프로그램 판매액이 마이크로프로세서 소프트웨어 제품으로 사상 첫 100만달러를 돌파합니다. 이후 16비트 프로세서용 베이식 개발에 나섰고, 애플 컴퓨터에도 호환할 수 있게 함으로써 MS의 폭발적인 성공을 견인하죠.

이 기회를 이용해 앨런은 다시 게이츠에게 수익 배분 문제를 꺼내지만 "다시는 얘기를 꺼내지 말라"며 수익률 배분 논의를 일축합니다. 앨런은 이때 울분을 삼키며 언젠가 게이츠와 헤어질 것을 결심했고 이후 빌게이츠가 스티브 발머를 영입할 때 자신도 모르게 합의한 것보다 높은 지분율을 제시한 것에도 마음이 상해 서로의 우정에 틈이 생기게 됩니다.

둘의 결별이 종국으로 치달았던 건 1982년 12월 게이츠와 발머가 옵션을 발행해 앨런의 지분을 줄이는 방법을 논의하는 현장을 들키면서 입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으로 방사선 치료 중이던 앨런은 1983년 2월 MS를 공식 사직했고 당시 주식 시가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주식 인수 제의를 하지만 앨런이 주식을 매각하지 않아 지금의 부호가 되죠.

암튼 때로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고 결국은 마음이 상해 갈라섰지만 사업 파트너로서 서로를 인정하는 마음만큼은 어쩔 수 없었는지 이런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혼자였을 때보다 함께했을 때가 더 성공적이었다. 나는 시장경쟁에 대한 빌의 놀라운 집중력,내가 실현 가능한 것에서 너무 떨어지지 않도록 견제하며 내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던 그의 능력이 그리웠다. "


빌게이츠와 폴 앨런이 주는 동업의 관계와 사람의 선택
빌게이츠의 독선적 성격과 타인보다 위에 있으려는, 그리고 남들보다 모든걸 더 얻으려는 욕심은 그를 세계 반열에 올려 놓지만 그 욕심으로 인해 지지자이고 영원한 동업자 였던 폴 앨런을 잃는 상황일 만듭니다.

이과정에서 스티브 발머와 양동 작전을 펼치며 발머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지만 결국 발머와도 충돌하며 발머의 발란을 진압하지 못해 MS에서 물러나게 되죠.

만약이란 가설이지만, 빌 게이츠가 덜 욕심을 부리고 앨런을 몰아내지 않았다면 지금 IT 업계는 어떻게 됬을까요?

아마 아직도 세상은 Microsoft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관련글]
1부 - 어린 시절 빌게이츠는 반항과 승부욕의 화신이었다.
2부 - 빌게이츠의 성공뒤엔 평생지기 폴앨런이 있었다
3부 - 빌게이츠 여관에서 MS 창업하다
4부 - 카피캣의 오명 남긴 MS-DOS와 Q-Basic의 진실
5부 - 빌게이츠와 스티브잡스, 서로 다른 모방과 창조론
6부 - OS의 역사적 교훈, 주도권 잃은 IBM과 MS의 동맹
7부 - MS와 빌게이츠에 날개 달아준 애플CEO 존스컬리
8부 - IT계의 다스베이더가 된 빌게이츠식 독과점 경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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